AI 에이전트로 시장을 분석한다는 것 / 1
market-analyst — 무엇을 만들었나
다음 사이클의 주도주를 초입에 잡기 위해 만든 시장 분석 시스템 소개
목차
미국 주식에 자기 자본을 굴리고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의미 있게 키워온 단계까지 와있고, 목표는 단순하다 — 다음 사이클의 주도주를 초입에 잡는 것.
지난 시리즈 AI Agent Engineering 5부작에서는 에이전트를 만들면서 더듬더듬 정리해온 원칙들을 풀었다. 에이전트는 함수다, 울타리는 타입이다, 모델은 기억하지 않는다, 에이전트는 조직이다 — 추상의 언어로 풀어낸 글들이었다.
그 원칙들은 허공에서 나온 게 아니다. 매일 운영하는 시스템 하나를 두드려가면서 침전된 결론이다. 그 시스템의 이름이 market-analyst다. Claude 에이전트로 미국 주식을 분석해 다음 사이클의 주도주를 조기 포착해보려는 시스템이고, 2026년 3월 초 첫 커밋 이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미국 전 종목을 스캔하며 돌아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그 시스템의 기록이다. 원칙이 아니라, 원칙이 나온 자리에 대한 글이다.
왜 만들었나
시작은 시장에 대한 관찰이었다.
미국 시장은 상승 사이클마다 주도주가 있었다. 닷컴 시절의 시스코, 모바일 시대의 애플, 2020년대 초의 엔비디아. 가까이 보면 팔란티어 같은 종목들도 그랬다. 종목은 다 다른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구조적 병목이든 시대 내러티브든, 한 시기를 끌어가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의 병목이었고, 애플은 모바일이라는 시대의 얼굴이었고, 엔비디아는 AI 인프라의 병목이었다.
그래서 첫 목표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다음 사이클에서 그런 자리에 있는 종목을 찾는 것. 매매로 잔파도를 잡는 게 아니라, 한 사이클을 끌어갈 종목을 초입 자리에서 잡고 길게 가지고 가는 것. 목표가 그렇게 정해지니 방법론도 따라왔다 — 추세추종, 그리고 Phase 2(상승 추세 초입, 뒤 용어집에서 정리) 진입 자리 포착. 스탠 와인스타인이 말한 Phase 2, 상승 추세의 초입에 진입한 종목을 리테일이 알아채기 전에 포착할 수 있다면, 그 안에 다음 사이클의 주도주가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가설이다.
이게 책상 위의 가설로만 있던 게 아니다. 이 시스템의 전신이었던 "스크리너" 시절에 "광통신 테마"의 한 종목을 직접 분석으로 발견해 선점한 적이 있다. 데이터는 도구가 모았고, 분석은 결국 내가 했다. 후보를 보고, 차트를 읽고, 산업 구조를 살피고, 들어갔다. 그 종목은 잘 갔다.
문제는 그 옆에서 놓친 종목들이었다.
직접 분석은 인지 범위에 막힌다. 미국 전 종목을 매일 같은 기준으로 사람이 스캔할 수는 없다. 광통신 테마처럼 운 좋게 시야에 들어온 종목 옆에서, 분명 같은 자리에 있던 종목이 있었을 거다. 같은 시기에 다른 주도 테마도 있었을 테고, 그건 통째로 시야 밖이었다. 운 좋게 잡힌 한 종목은 운 좋게 잡힌 것뿐이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분석을 자동화하기 시작한 게 market-analyst다. 사람이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미국 전 종목을 매일 같은 기준으로 훑고, Phase 2 초입 자리에 들어선 종목들을 광망(뒤 용어집에서 정리)에 담아두는 시스템. 그 위에서 토론 에이전트가 서사를 입히고, 명제(thesis)를 발행하고, 시간이 지나면 데이터로 채점받는 구조.
핵심은 세 가지였다. 모니터링 범위(전 종목), 판단 기준의 일관성(코드로 표현된 가설), 검증 가능한 기록(DB에 박힌 추천과 추적).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해서 에이전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왜 LLM인가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이 자연스럽게 든다. Phase 판정, RS 계산, SEPA 스코어링 — 이런 건 다 룰 베이스로 충분하지 않나. 굳이 LLM이 끼어들 자리가 있나.
맞는 의심이다. 정량 게이트는 LLM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SQL과 수식으로 처리한다.
LLM이 필요한 자리는 따로 있었다. 검증 가능한 시장 가설을 명제(thesis)로 정리하고, 메가트렌드에서 병목과 수혜주로 이어지는 서사 체인(narrative chain)을 추적하고, 같은 데이터를 매크로·펀더멘탈·센티먼트·지정학·테크 다섯 페르소나의 시점으로 토론하게 만들고, 정량 지표(VIX·브레드스)와 정성적 매크로 컨텍스트를 결합해 시장 레짐을 판정하는 일. 이 자리에서 LLM이 일한다.
정량 지표는 후보를 거른다. 정성적 추론이 그 후보에 서사를 입힌다. 알파는 후보가 아니라 서사에서 나온다는 게 지금의 가설이다.
도메인 용어 — 짧고 정확하게
이후 글들에서 같은 용어를 다시 설명하지 않을 거라 여기서 한 번에 정리한다.
- Phase (Weinstein) — 종목의 추세 단계. Phase 1(바닥 다지기, MA150(150일 이동평균) 평탄) → Phase 2(상승, MA150 우상향 + 가격 > MA150) → Phase 3(천장, 분산) → Phase 4(하락). 이 시스템이 잡고 싶은 자리는 Phase 2 초입이다.
- RS (Relative Strength) — 전체 종목 대비 모멘텀 퍼센타일(0~100). 12개월·6개월·3개월의 가중 평균이고, 중기 모멘텀에 가중치가 더 실린다. RS 80 이상이면 상위 20%, 90 이상은 과열 구간으로 본다.
- SEPA (Mark Minervini) — 원래는 펀더멘탈·테크니컬·타이밍을 합친 방법론 전체 이름이지만, 이 시스템에서는 펀더멘탈 등급으로 좁혀서 쓴다. S/A/B/C/F의 5단계.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는 종목만 통과하고, 여기에 이익 가속과 마진 확대가 보너스로 붙는다. S/A 등급은 전체의 약 3% 수준으로 매우 까다롭다. 기준을 낮추면 의미가 사라진다는 걸 운영하면서 알게 돼서, 일부러 엄격하게 두고 있다.
- 광망(wide-net) — Phase 2 + 게이트 통과 종목을 폭넓게 트래킹하는 풀. 후보 풀이다.
- 모델 포트폴리오 — 광망에서 격상된 종목으로 실제 진입/탈출을 시뮬레이션하는 풀. 알파 측정의 단위다.
광망과 모델 포트폴리오는 책임이 다르다. 광망은 "편입할 만한가"를 묻고, 모델 포트폴리오는 "진입할 것인가, 언제 빠질 것인가"를 묻는다. 이 분리가 흐려지면 가설 검증도 흐려진다는 걸 한 번 부딪히고서야 알았다.
시스템 한 눈에
전체 흐름은 다음과 같다.
ETL (가격·재무·매크로)
↓
파생 지표 계산 (Phase, RS, SEPA, 브레드스)
↓
분석 에이전트 (시장 레짐 / 섹터·업종 RS / 주도주 후보)
↓
5인 토론 + thesis 발행
↓
리포트 리뷰 (발송 전 페르소나 점검)
↓
광망 → 모델 포트폴리오 → 90일 트래킹
↓
알파 측정 (vs SPY)
각 레이어를 한 줄씩 풀면 이렇다.
- ETL: FMP에서 미국 전 종목의 가격·재무를, FRED에서 매크로 지표를 매일 끌어온다. 지금까지 들어간 커밋의 절반 가까이가 데이터 품질 작업이다. 깨끗한 데이터 없이 가설 채점은 시작도 안 된다는 걸 일찍 배웠다.
- 파생 지표: Phase 판정, RS 계산, SEPA 스코어링, 시장 브레드스가 매일 누적된다. 이 층이 흔들리면 위층이 다 뜬구름이 된다는 걸 한 번 경험하고 나서, 이 층에 가장 많이 손을 댔다.
- 분석 에이전트: Claude가 시장 레짐을 판정하고, 섹터·업종 단위 RS를 읽고, 주도주 후보를 도출한다. 사람이 아니라 코드가 같은 기준으로 매일 본다.
- 토론 + thesis: 5명의 분석가 페르소나가 토론하고, 검증 가능한 명제(thesis)를 발행한다. thesis는 시간이 지나면 데이터로
CONFIRMED/INVALIDATED/EXPIRED판정을 받는다. - 리포트 리뷰: 발송 전에 리뷰 에이전트가 한 번 더 본다. 사후 검증이 아니라 발송 전 게이트로 두고 있다.
- 트래킹: 추천된 종목은 90일 동안 추적된다. 자기 자랑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구조다. SPY 대비 알파가 모든 걸 말한다.
핵심은 이거다. 단순한 보고서 봇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장 가설을 코드로 표현하고, 시장 데이터로 채점받는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매주의 리포트가 아니라 분기 단위 누적 PnL을 진짜 성과 지표로 삼으려 한다.
다만 솔직히 적자면, 이 시스템은 아직 한 분기를 통째로 굴려본 적이 없고, 내 자본을 직접 굴리는 단계도 아니다. 실제 매매 결정은 여전히 내가 직접 한다. 시스템은 "놓치는 종목 없이 일관된 스캔"을 제공하고, 그 위에서 가설을 검증해보는 단계에 있다. 사람이 시스템을 참고하는 단계지, 시스템에 자본을 맡긴 단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성과 자랑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가설을 폐기해온 과정에 대한 회고다.